지난달 19일 고(故) 채수근 상병이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을 하다 급류 에 휩쓸려 숨진 사고는 해병대 지휘부가 작전 초기부터 실책을 거듭해 빚어진 '인재'인 것으로 조사됐다.
11일 국방부가 확인한 해병대 수사단의 '언론브리핑' 자료에 따르면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은 지난달 15일 오전 7시 20분께 경상북도 재난상황실로부터 실종자 수색 등 재난지원 요청을 받았다.
그러나 임성근 사단장은 이틀이 지나 장병들이 예천에 전개되는 당일인 17일 오전 10시 10분이 되어서야 A여단장에게 "피해 복구 작전의 중점은 '실종자 수색'이다"라고 지시했다.
뒤늦은 지시에 장병들은 구명조끼와 같은 안전장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현장으로 이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A여단장은 같은 날 오후 8시께 예천에 도착해 예하 대대에 '다음날부터 바로 실종자 수색 작전을 시작 한다'고 알렸다.
실종자 수색 작전은 이튿날인 18일 오전 8시 30분부터 시작됐다.
A여단장은 오후 8시 30분 수색작전 회의를 주관하면서 "수변 수색활동이 원칙이고 입수는 금지하나, 의심지역 수색이 필요하면 장화 착용 높이까지는 들어갈 수 있다"고 지시했다.
그런데 회의를 마친 뒤 여단 소속의 B대대장은 이 지시를 부풀려 "여단장 승인 사항이니 허리 아래까지는 들어갈 수 있다"고 다른 지휘관들에게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고 당일인 19일 오전 7시 55분, 채 상병을 포함한 중대가 예천 내성천 보문교 일대에 전개됐다.
채 상병 소속 부대의 대대장은 전날 B대대장한테서 전달받은 대로 장병들에게 불어난 강물에 허리 깊이까지 들어가 수색하라고 지시했다.
해병대 채수근상병 사망사건의 일파만파: 대통령의 격노
채 상병은 오전 8시 10분부터 보문교 상류 지역부터 하류 방향으로 수색을 진행하던 중, 동료들과 함께 물에 휩쓸렸다.
물에 휩쓸린 5명 가운데 2명은 스스로 헤엄쳐 빠져나오고, 또 다른 2명은 다른 사람에게 구조됐지만 채 상병은 끝내 물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실종된 채 상병은 오후 11시 7분께 실종 지점에서 6.5km 떨어진 곳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해병대 수사단은 임성근 사단장이 작전 지도를 하면서 수색과 관계없는 복장, 경례 태도, 언론 브리핑 상태 등을 지적해, 현장 지휘관들이 부담을 느끼고 장병들에게 무리하게 '허리 아래 입수'를 지시하면 서 채 상병이 사망하게 됐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해병대 수사단은 임 사단장 등 지휘관 8명이 업무상 주의 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해병대 채수근상병 사망사건의 일파만파: 대통령의 격노
해병대 수사단은 국방부 장관 보고 이튿날인 지난달 31일 언론브리핑을 열어 수사 내용을 설명할 예정 이었으나 국방부는 브리핑을 취소토록 했다.
해병대 수사단의 국방부 브리핑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지시로 브리핑 2시간 전에 보류되고 말았다.
해병대 수사단장은 집단항명 수괴
해병대 채수근상병 사망사건의 일파만파: 대통령의 격노
수사단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은 죽은 채수근 상병의 죽음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하여 동분서주 노력한 결과로 결국은 보직이 해임되고 항명죄로 조사를 받는 범죄자 신분으로 되었다.
정의가 살아있는 대한민국인지 한탄스러운 일이 발생한 것이다.해병대 채수근상병 사망사건의 일파만파: 대통령의 격노
해병대 수사단이 범죄자 집단으로 몰아야만 하는 해병대 사령관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포함한 국방부 감찰단은 어찌 하여야 할 것인가, 누구의 지시가 이렇게 어마무시한 것 일까?
외압인가? 항명인가?
해병대 채수근상병 사망사건의 일파만파: 대통령의 격노
국방부 검찰단은 해병대 수사단 단장과 단원 포함 3명이 단체로 항명하였다 하여 집단항명으로 하였다가 사건이 확대되는 것을 우려한 국방부가 수사단장 개인의 항명으로 죄목을 변경하였다는 느낌이 강하다.
결국은 국방장관의 지시로 국회 기자회견이 취소되었다. 보고를 하려던 해병대 부사령관과 대기하고 있던 모든 사람이 황당하게 되었다.
꽃샘추위가 들이닥친 3월 1일 오후 2시,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해병대 예비역들이 서울지하철 2호선 홍대 입구역 앞에 모여들었다. 해병 154기부터 1158기까지 예비역 50명가량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을 목적지로 행진을 시작했다. 경북 예천에서 지난해 7월 수해복구 작업 도중 사망한 채모 상병의 순직과 수사외압 의혹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특검법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홍대입구역에서 시작 된 해병대예비역연대의 행진은 신촌로터리와 이대역 앞, 서울역을 거쳐 대통령실 앞까지 이어졌다.
이들은 '채상병 특검법 통과' 등의 문구가 적힌 붉은 깃발과 현수막, 태극기를 들고 행진에 나섰다. 낮 기온도 영하로 떨어진 추운 날씨에도 전투복이나 티셔츠만 입고 행진에 참여한 이들도 있었다. '해병대' 글씨가 적힌 빨간색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행진하던 한 예비역은 "강인한 해병대 정신을 보 여주려고 반팔을 입었다"고 했다.
해병대 채수근상병 사망사건의 일파만파: 대통령의 격노
행진 내내 이들은 "오와 열"을 외쳤고 군가 '영원한 해병'을 부르며 발을 맞추는 등 일사불란한 모습 을 보였다. 행진 중에는 "채상병 특검법 통과시켜라", "(해병대 수사단장이던) 박정훈 대령 탄압 중지 하라" 등의 구호도 들려왔다.
인천에서 온 822기 전병흔씨는 "평일에는 택배 일을 하느라 모임에 못 나갔는데 3·1절인 오늘만큼은 꼭 오고 싶었다"라며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예비역 김모씨도 "오늘만큼은 안 왔으면 후회했을 것"이라며 "한참 후배인 채 상병을 떠올리면 안타깝다"라고 했다.
진상규명 요구에 정치적 프레임을 씌우지 말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전태욱씨는 "세월호 때, 이태원 참사 때 유족들을 정치적이라며 비난하던게 또 반복되고 있다"라면서 "저희가 정치적 이익을 도모 하는 것도, 박정훈 대령이 사익을 도모하는 것도 아니며 해병대 정신인 자유와 정의를 지키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항명으로 바뀌는 순간
해병대 채수근상병 사망사건의 일파만파: 대통령의 격노
7월 31일 12시 50분에 수사 결과를 발표하려던 브리핑이 취소되고 국회 보고도 취소되었다.
그리고 잠시후 13시 30분에 국방부 긴급회의가 열린다. 참석자는 우즈베키스탄 출장을 가기 직전의 2시간 전 이었다. 국방부 장관은 참모인 유재은 법무관리관도 참석시켰다.
유재은 법무관리관은 회의가 끝나고 15시 18분에 박정훈 대령에게 5차례 전화하며 경찰에 넘길 수사 내용을 고쳐서 전달하라는 요구였지만 박정훈 대령은 외압을 거론하며 요구를 거부하한다.
해병대 채수근상병 사망사건의 일파만파: 대통령의 격노
"죄명을 빼라"
"혐의 사실을 빼라"
"혐의자를 빼라"
명시적인 이야기는 없었지만 "혐의자에 대대장 이하만 넣고 사단장과 여단장은 빼라"는 요구로 강하게 외압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저에게 '이 사건에 대해서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사람으로 한정하면 좋겠다'라고 하길래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물에 들어가라고 한 대대장 이하를 이야기하느냐'라고 되물었고 거기에 법무관리관은 '그렇다'라고 하였다.
국방부 장관은 14시 511분 우즈베키스탄으로 가는 차안에서 국방부 신범철 차관에게 전화를 하여 "경찰에 수사 서류를 넘기지 말도록 지시" 하였고 차관은 17시 30분에 해병대 김계환 사령관에 장관의 지시를 전화로 전달한다.
박정훈 수사단장은 장관의 대기 명령을 누구에게도 받은 적이 없었다. 박정훈 수사단장은 결국 처음 수사한 내용을 변경할 수가 없었기에 그대로 경찰에 제출하였고 박대령은 상관의 지시를 어겼다는 이유로 수사단장의 보지을 해임 당했으며 집단항명 수괴로 지목되었으며 국방부 검찰단인 군검찰은 수사자료를 되돌려 받아왔다. 경찰은 해병대 군사경찰이 제출한 수사 자료를 국방부 검찰단에게 수사 자료를 그냥 내어줬다.
해병대 채수근상병 사망사건의 일파만파: 대통령의 격노
국가인권인원회는 사건이 축소은폐되었을 가능성 있어 조사하겠다 밝혀..
해병대 채수근상병 사망사건의 일파만파: 대통령의 격노
국가인권위원회는 사건 자료를 경찰에 보내지 않는다든가 자료중 일부를 취사 선택하여 선별적으로 경찰에 보내는 경우 축소 은폐에 대한 경우 국민적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임이 불을 보듯 뻔하다하지 않을 수 없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사건을 다시 검토 결과
해병대 채수근상병 사망사건의 일파만파: 대통령의 격노
해병대 채수근상병 사망사건의 일파만파: 대통령의 격노
결국 국방부 조사본부의 수사결과가 바뀌게 된다.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결과 보고서
사단장 : 과실치사
여단장 : 과실치사
대대장 2명 : 과실치사
하급간부 4명 : 과실치사
국방부 조사단의 재검토 결과서
사단장 :과실치사
여단장 :과실치사
대대장 2명 :과실치사
하급간부 4명 :과실치사
이종섭 국방부장관의 국회 국방위 보고자리에서 한 이야기(8월 21일) :
"잘못을 엄중히 처벌해야 하지만 죄 없는 사람을 범죄인으로 만들어서도 안 되는 것이 장관의 책무입니다."
결국 수사 서류는 사망 사고 36일 만에 경북지방경찰청에 제출하게 된다. 우려한 것과 같이 여단장과 사령관이 모두 빠진 상태로 제출된 것이다. 이미 제출된 해병대 경찰단의 자료를 국방부가 뒤집어서 다시 제출한 것이다.
국방부 장관은 자신이 결재 서명한 보고서를 자신이 뒤집은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종섭 국방부장관 집무실 보고자리
참석자와 일시 : 국방부 국방부 장관 집무실 2023년 07월 30일 16시 30분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발언
해병대 채수근상병 사망사건의 일파만파: 대통령의 격노
허태근 : 국방부 정책실장
해병대 채수근상병 사망사건의 일파만파: 대통령의 격노
전하규 : 국방부 대변인
해병대 채수근상병 사망사건의 일파만파: 대통령의 격노
김계환 : 해병대 사령관
해병대 채수근상병 사망사건의 일파만파: 대통령의 격노
해병대 채수근상병 사망사건의 일파만파: 대통령의 격노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결재를 하였으며 박정훈 대령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고하였다"라고 격려도 하였다.
그러나 장관은다음 날 결재한 지 20시간만에 자신의 결재를 번복하였다.
대통령실의 개입 정황
해병대 채수근상병 사망사건의 일파만파: 대통령의 격노
장관은 "결재할 때 확신이 있어서 결재한 것이 아니었다."
"변명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확신이 없이 결재했다" 장관이 맞나...?
"사단장을 봐 줄려는 의도는 없었고 다만 초급 간부가 마음에 쓰였다" 한다. 그래서 참모에게 지시를 해 "다시 생각이 나서 초급 간부가 신경쓰여 다시 조치를 했다"고 하였다.
지시를 따르지 않은 세사람(광역수사대장과 수사관 2명)이 같이 연락되지 않아 집단항명으로 모의를 하였다고 생각해 수사단장은 집단항명수괴죄로 책임을 물었다고 한다.
집단항명수괴죄
내란처럼 집단을 이뤄서 상관의 명령에 반항하고 거부하는것. 항명한 조직의 우두머리를 수괴라 부른다.
전시 :무기징역
평시 :3년이상 징역
장관 결재 이후 20시간 동안 일어난 변화
2023년 8월 11일 언론에 배포된 박정훈 대령 작성 언론에 "해병대사령부 채수근 상병 사망사건 수사 진행경과"라는 A4 8매 정도의 자료가 언론에 배포되었다. 그 중에 스트레이트가 수집한 자료중에,
해병대 채수근상병 사망사건의 일파만파: 대통령의 격노
대통령 격노한 정황과 설명이 포함되어 있다.
* 이후사령관에게 전해들은 바. 7.31(월) 오전 대통령 주관대통령실 회의시 안보실 국방보좌관이"해병대 1사단 익사사고 조사결과 사단장 등 8명을 업무상과 실치사혐의로 경찰에 이첩 예정이다."라고 보고하자대통령이 격노하면서 바로 국방부장관 연결하라고 하고"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게 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고 질책했다고 하는데, 대통령은 사단장의 구체적인 혐의사실에 대하여 정확하게 보고받지 못한 걸로 보이며, 장관주관 긴급회의 간......
해병대 채수근상병 사망사건의 일파만파: 대통령의 격노
이명박 정부 시절에 현재의 대통령실 김태효 국가안보실1차장, 이종섭 국방부 장관,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은 같이 이명박 정부 청와대 근무를 한 이력이 있다. 김태효 1차장은 현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의 실세중 실세라고 한다.
결론: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
사건은 간단한 것 이었다. 2023년 여름 영천지역에서 내린 폭우로 심한 산사태와 그로 인한 수해가 발생하였고 민간인 인명 피해가 발생하였으며 국민과 국가의 든든한 심부름꾼이자 아들 딸들이 수해 피해 복구를 위한 대민지원 사업에 나섰다 젊디 젊은 20살 나이로 입대한지 겨우 2개월차인 해병대 채수근 일병이 하천 안전 도구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로 수색에 나섰다 급류에 훱쓸려 4명은 구조되고 채일병은 사망한 사건이다.
부대를 지휘한 사람의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을 물으면 되는 아주 상식적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어떤 연유로, 해병대 수사단에서 조사한 보고서를 장관이 결재한 수사 보고서가 폐기되고 사건의 새로운 보고서가 나와 사건을 은폐 축소한 것이다. 은폐한 사람들의 핵심에 대통령실과 대통령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수사를 하지 않고 있다가 결국에는 야당의 특검 법률 재정으로 이 사태까지 온 것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게 생겼다. 정권퇴출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대통령의 탄핵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는 현재의 2024년 5월의 대한민국이다.